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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각본, 연기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진 영화. 어느것 하나 느슨해질 틈 없이 끝까지 밀어붙인다. 덕분에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숨이 찰 정도.

이 영화엔 한명의 연쇄살인자와 그를 쫒는 한명의 추격자가 등장한다. 범인을 잡는것을 직업으로 하는 경찰보다 당장 그 살인자로 인해 자신의 일에 지장을 받고 있는 추격자의 광기가 살인자를 자극시킨다. 더욱 흥미로운것은 살인자를 잡는것 보다는 그의 행적을 밝히고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나홍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분명 국내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인상깊게 기억될 수작이다. 그가 장편 데뷔를 하기 전 만든 단편영화들을 보면 결코 이 영화가 우연하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란걸 알 수 있다. '완벽한 도미요리' 라는 단편영화에 등장하는 광기어린 집착의 요리사는 자연스레 연쇄살인마를 쫒는 추격자에 투영된다. 그러니 이 작품과 감독을 보며 '지리멸렬' 이란 단편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봉준호 감독'과 그의 장편 데뷔작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나에게 이 영화가 가장 크게 어필했던점은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플롯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한 길로 흘러가는 이야기. 그럼에도 긴장감이 살아있는건 뛰어난 상황 설정이다. 흡사 미국드라마 '24'의 주인공이 매 시간 위기를 겪으며 항상 내부의 적들에게 뒤통수를 맞는것처럼, '추격자' 역시 계속적으로 살인자의 뒤를 쫒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면서 정작 살인자는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제3자 입장에서 이 둘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는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쥘 수 밖에.

살인자 역할의 하정우와 추격자 역할의 김윤석 역시 이 영화를 뛰어나게 만드는 큰 축이다. 하정우는 언젠가 처음 봤을때부터 양면성을 지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추격자'에서 그 느낌을 명확하게 증명해 보인다. 이 역할에 그가 아닌 어떤 배우를 대입해 보아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만큼,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 냈다. 또한 김윤석 역시 기대 이상이다. 단순하게 시작된 추격이 점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살인자에 대한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그 어떤 영화 속 캐릭터들 보다 인상깊다.

'추격자'의 등장으로 대부분의 국내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반전 공포증'과 '블럭버스터 공포증'이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없어도, 최대 제작비를 갱신하지 않아도 기본만 탄탄하면 이렇게 멋진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추격자'가 증명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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