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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무박2일 일정으로 전주영화제에 다녀왔다. 이번이 벌써 JIFF에 참여한지 3년째라 이젠 제법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한옥 느낌으로 지어놓은 전주역도,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영화의 거리도.

올해는 처음으로 혼자 전주행 기차를 탔는데, 기차 안에서 나처럼 혼자 전주로 향하던 사람을 만나게 됐다. 기차 안에서 내가 읽던 씨네21을 보고 영화제가 가는 사람인것 같아 말을 걸었다고 하니 정말 신기한 인연. 처음 만났지만 서로 영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전주에 도착했고, 그 친구도 나와 같은 '불면의 밤'을 보는 무박2일 일정이어서, 심야상영이 끝나는 새벽까지 함께 움직였다. 역시 혼자떠나는 여행의 묘미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인듯.

그리고 아래는 전주에서 본 영화들 이야기.

1. 영화보다 낯선 단편모음2
영화제 갈때마다 꼭 빠뜨리지 않고 예매하는 프로그램이 '단편모음' 이다. 이번에도 역시 일정에 맞춰 단편모음을 예매했는데, 정말이지 이번 단편모음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단편모음들 중 가히 최악이라 할만 했다. 7~8개 정도의 단편을 묶어서 상영했는데, 어쩜 그리 하나같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지. 이해가 안가는건 둘째 치고, 반복적인 영상들에 멀미가 날 정도였다. 끝나고 GV가 있었지만, 머리가 어지러워서 더이상 자리에 앉아있을수가 없더라.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자 마자 도망치듯 상영관을 나서는걸 보고 영화제 자원봉사자 분들이 어찌나 당황스러워 하던지.


2. 캘리포니아 드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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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보고 어지러워진 머리가 이 영화를 보고 말끔해졌다. 코메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굉장히 아프고 쓰린 이야기. 루마니아 시골 마을을 벗어나고 싶은 딸과,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딸을 키우고 싶은 보수적인 아버지, 그리고 너무나 순박해서 웃음을 주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 우연히 작전을 수행중인 미국군인들이 며칠을 머무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인데, 유쾌한 웃음을 주면서도 루마니아의 역사적 아픔과 미국에 대한 비판, 군중들에 의한 집단 심리등이 잘 그려진 수작이다. 엔딩곡으로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흐르는데, 같은 노래 인데도 중경삼림에서와 너무나 다른 느낌이어서 놀랍더라. 인기투표로 이 영화를 선택하고 왔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음 좋겠다.


3. 시체들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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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 호러의 밤' 첫번째 영화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신작 '시체들의 일기' 이다. '블레어위치' 혹은 '클로버필드'를 떠올리게 되는 구성에 감독의 대표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의 좀비들을 합쳐놓은 형태다. 그의 전작들에 비해 이 영화는 다소 얌전한 편이어서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활기넘치는 조지로메로 감독의 새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영화 끝나고 간식을 나눠주기 위해 온 영화제 홍보대사 김성은, 김재욱에게 다들 좀비처럼 달려들었다는 후문이.ㅋㅋ


4. 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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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엑소시스트'를 만든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영화다. 때문에 공포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 하면 떠오르는 원초적인 공포(?)를 기대했으나, 이 영화는 심리적인 공포 영화였다.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 한정된 주인공들이 펼치는 사이코 드라마 같은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영상이나 사운드로 관객을 놀래키기 보다는 서서히 소름돋게 만드는 스타일. 문제는 이 영화가 심야상영 2번째 영화로 새벽 2시경에 상영됐다는 점이다. 영화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었(을것 같았)으나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몇 장면에서 잠깐씩 졸았던것 같은데, 영화 끝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후반부에 여주인공의 독백으로 10분 가량 이어지는 롱테이크씬이 있었다고 하더군. 참,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배우가 '애슐리 주드' 라는 사실을 크레딧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정말 흐르는 세월은 무시할 수 없는 듯.


5.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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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밤 - 호러의 밤'의 마지막을 진정 화려하게 장식 한 영화. 안그래도 불멸의 밤 시작부터 호러영화에 열광하던 많은 관객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작품이다. 앞서 상영한 두편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대가 덜 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영화의 초반은 왠지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떠오르게 했다. 곧 엄청난 일이 벌어질것 같은 분위기인데, 상황이나 두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들이 너무 웃긴거다. 그렇게 초반에 재미있게 보다가 내가 또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터진 엄청난 비명들에 놀래 잠에서 깨어나 무심코 쳐다본 스크린 속 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화 속에서 짜증날 정도로 시끄럽게 굴던 여자에게 몬스터 처럼 생긴 괴물(?)이 도끼를 날려 정확히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를 맞춰 두동강을 낸것. 그 이후로 이 괴물의 엽기적인 행각은 계속됐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또한 괴물의 공격 대상인 형제들은 그 와중에도 어찌나 웃기던지. 거의 영화가 끝날때까지 웃다가 소리지르다가를 반복한것 같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 나오는 쿠키는 이 영화가 진정한 컬트임을 다시한번 각인시킨다. 영화의 수위가 너무 높아서 국내 무삭제 개봉은 힘들듯. 암튼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오두막' 이다.


이렇게 심야영화를 보고 다음날 첫 상영작으로 베트남 특별전에 속한 영화를 보려고 예매했었는데, 장장 불면의 밤이 끝난 새벽 6시부터 1회 상영이 시작되는 11시까지 5시간을 기다릴 엄두가 나질 않아 그냥 9시에 시작하는 아이언맨을 보고 영화의 거리 부근을 구경하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올해 역시 잊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해준 전주 국제 영화제. 뉴스에서 올해는 작년보다 5만명 정도 관객들이 더 몰렸다고 하니 정말 날로 발전하는 듯.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영화제 규모가 무작정 커지는 것 보다는, 처음 JIFF에서 느꼈던 소박하지만 신나는 축제의 분위기와 다양한 마이너(?)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이 느낌만 잃지 않는다면 아마 계속 이맘때면 전주를 찾게 될 것 같다.


덧. 후기2편은 이번 영화제때 찍은 사진 위주가 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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