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는 이윤기 감독 연출에 전도연과 하정우가 출연하는 영화이니 내 기준에서는 블록버스터다. 그래서 처음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부터 영화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이들이 한 영화 속에서 어떤 조화를 이룰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드디어 뚜껑을 열어보니...역시나 기대 이상이다.

'멋진 하루'는 예전에 빌려줬던 돈을 돌려받기 위해 옛 남자친구를 찾아간 한 여자의 '하루'를 담은 영화다. 갑작스레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 여자나, 그녀의 등장에 당황하면서도 다시금 능글맞게 행동하는 남자나 결코 범상치 않다. 여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안에 돈을 받아야 겠다고 우기고, 당장은 돈이 없다던 남자는 여자와 함께 자신이 알던 사람들을 하나 둘 찾아가 다시 돈을 빌려 그녀에게 갚는다.

그들을 하루동안 함께 하게 만든건 '돈' 이었지만 그 하루를 통해 만나게 되는, 그들이 함께했던 과거의 흔적들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잊고 있던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당시엔 진심이었을, 하지만 이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빛바랜 감정들을 남자의 시덥잖은 농담 만큼이나 가볍게 치부해 버리려던 여자는 아주 조금씩 그를 사랑했던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현재에 투영시키게 된다. 자신과 헤어지고 많이 아팠다는 남자의 이야기가, 1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다는 그의 이야기가,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의 모습들이 그녀에겐 위로가 된다. 그래서 이 하루가 여자에게 있어서는 의외로 '멋진 하루' 였달까.

영화의 주연을 맡은 전도연과 하정우의 만남은 정말 완벽했다. 전도연은 역시나 냉정한척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속으론 조금씩 흔들리다 결국엔 휘청 하는 여자의 심리를 너무나 잘 표현해 주었고, 하정우는 시종일관 가볍고 말이 많으며 진지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슬며시 진심이 느껴지는..그래서 마냥 미워 할 수만은 없는 남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두 역할 모두 다른 배우들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얼마전에 본 '영화는 영화다'도 그렇고, '멋진 하루'도 그렇고..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서도 이 만큼의 완성도를 가진 영화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국내 영화들에 희망을 갖게 한다. 무조건 큰 스케일에 대단한 특수효과를 자랑하기 보다는, 이렇듯 탄탄한 구조와 연기가 조화를 이루는 인상깊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 영화를 보면서 음악도 참 좋다 생각했었는데, 엔딩 크레딧을 보니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OST에 참여 했더라. 영화와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아주 잘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