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

나는 처음 이 영화의 내용이 '잘나가는 DJ에게 갑작스럽게 아들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식의 설정은 그동안 다른 영화를 통해서 너무나 많이 써먹었고, 또 제대로 풀어내지도 못했는지라 이번에도 별 다른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 개봉후에 주변 반응들이 너무나 한결같이 좋은거다. 아무리 봐도 특별할것이 없어보이는데. 그래서 다시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36살 DJ에게 갑자기 아들이 생긴것이 아니라, 그의 앞에 갑자기 22살 딸이 미혼모가 되어 6살 아들과 함께 나타난다는 설정이었다. 내가 처음 알고 있던 흔한 설정을 살짝 비틀어 굉장히 신선한 발상으로 전환시키면서 시작하는 영화.

이야기의 구조는 굉장히 단순하다. 나름 혼자 잘 살고 있던 DJ 남현수에게 어느날 한 여자가 6살 아들의 손을 잡고 자신이 당신의 딸이라며 나타난다. 결국 셋의 뒤죽박죽 동거생활이 시작되고, 황당하던 셋의 관계가 조금씩 적응 될 즈음에 이들의 관계가 폭로 될 위기에 처하고, 결국 남현수가 자신의 딸과 손자를 진심으로 받아드리면서 해피엔딩. 여기까지는 초반에 언급한 설정을 들으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장점은 이런 황당한 상황들을 너무나 재미있고 그럴듯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DJ와 딸의 관계가 DJ와 청취자의 관계로 중첩되면서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있게 지속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 또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기 보다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스토리와 편집으로 속도감이 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중간중간 굉장히 솔직하고 순수한 웃음을 유발시킨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꼭 언급해야 될 것이 캐스팅이다. 솔직히 이 영화에 대해 편견이 생기된 이유가 '차태현' 이란 배우의 조금은 가볍고 고정적인 이미지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 외의 대안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잘 어울린다. 또한 그의 딸로 등장하는 박보영은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것이 없더라. 차태현과 나란히 보니 은근히 닮은 모습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연기가 참 좋아서 기억에 남는 배우. 이 딸의 아들로 나오는 아역 배우의 연기도 압권. 대부분의 웃음이 이 아역배우의 능청스런 연기로 인해 나왔을 정도다. 그리고 이 외에도 미쓰 홍당무에 이어 두번째로 영화에서 만나는 황우슬혜, 인디 영화들에서 두각을 보이던 임지규의 모습도 반가웠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관건은 '관객들의 편견을 깨는 것' 이다. 워낙 이런류의 영화들은 가볍거나 혹은 유치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나 부터도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스쳐 지날것 같다. 이런 부분을 마켓팅으로 잘 풀었으면 싶은데, 포스터나 예고편의 느낌이 너무 평범해서 좀 아쉽더라. 그래도 입소문을 타고 다른 영화들에 비해 흥행이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인듯.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들은 사람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 단지 한국영화의 팬으로서의 바람이랄까.

올 한해는 국내 영화 제작편수도 줄고, 관객도 줄고, 수익도 줄고 했다는데 질적으로는 최고로 알찬 한해가 아닌가 싶다. 추격자, 미쓰홍당무에 이어 과속스캔들이란 영화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덧1. 이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듣기로는 '윤하'가 영화 속 박보영이 맡은 역할로 거론되고 있다는듯. 원본 영화의 플롯이 좋아서 뮤지컬로 만들어도 재미있을것 같다.

덧2. 올해 개봉작중에 '울학교ET'라고, 김수로가 원톱으로 나온 영화가 있는데, 영화 자체는 너무나 엉망이었지만 배우들 보는 재미는 있었던것 같다. '과속스캔들'의 박보영이 전교1등 모범생으로 나오고, 드라마 '바람의 화원' 정향 역할의 문채원이 가난한 집 딸로 나오며, 곧 방송될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츠카시 역할로 나오는 이민호는 부잣집 반항아로 나온다. 물론 연기는 단연 박보영이 뛰어났다. 김수로 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 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