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눈 쌓인 지리산

기억하고/풍경 2008. 11. 30. 11:25 Posted by 주드
산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리산' 만큼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 속 배경이었던 지리산의 모습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것도 같고, 몇년 전 지리산에 다녀온 누군가가 잊을 수 없었다던 그 쏟아지는 별들이 보고 싶어서 인것도 같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 지리산 산행을 2번 정도 준비했었는데, 한번은 스케쥴이 꼬여서.. 또 한번은 떠나는 날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포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세번째 시도는 바로 올해. 하지만 이번 역시 순탄치는 않았다. 출발하기 전날 갑작스레 큰 눈이 내려서 굉장히 위험한 상태 였던것. 그래서 여차하면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일단 지리산행 버스를 탔다.


지리산 입구에서 관리를 하시던 분은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우리를 보며 다치고 싶지 않으면 포기하라고 걱정어린 협박(?)을 하셨고, 산행중에 마주친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위로 올라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다며 장비가 없다면 힘들거라고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더욱 오기가 생겨서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가도가도 목적지인 산장은 보이질 않고, 해는 점점 저물어 가고, 바람은 점점 거칠어지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결국 우리는 아슬아슬 하게 겨우 산장에 도착했고, 그 앞에서 어느새 하늘에 떠 있는 수 많은 별들을 봤다. 역시 힘들게 그곳까지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드디어 멀리보이는 산장! 이때의 기분을 잊을수가 없다.


다음날 새벽에는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좋아 산장 앞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매일 뜨고 지는 '해' 이건만, 그곳에서 보는 일출은 어찌나 특별하던지. 멀리 보이는 남해의 모습과 멋진 지리산의 능선이 합쳐져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다.



우리는 일찌감치 짐을 챙기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쌓였던 눈들이 모두 꽁꽁 얼어버렸다는 것. 게다가 내려가려는 코스는 온통 바위와 돌들로만 구성된 험한 길. 산장에서 팔던 아이젠을 사서 끼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온몸의 근육도 얼음처럼 얼어붙은 느낌. 숨이 차서 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내가 도대체 저 바위절벽을 어떻게 내려왔나 싶었다.



이렇게 다행이도 아무런 외상(?)없이 1박2일의 산행을 마쳤다. '무식해서 용감하다'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였달까. 지리산이 그렇게 험할줄은, 눈 덮인 산이 그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던것이다. 알았다면 지레 겁먹고 시작을 안했겠지.

이번 산행에서 글로는 다 표현이 힘들정도로 고생을 너무너무너무 많이 했던 바람에, 서울로 돌아온 버스 안에서는 살아돌아온것 만으로도 감사하단 생각과 함께 앞으로 못할게 없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생각들은 일주일만에 희미해졌지만.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니 당시의 상황이 막 떠오르며 또 다시 숨이 차다. 아마 이제 몇년간은 산 근처에도 가지 않을 듯.


덧.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되는 '티스토리 탁상 달력 사진 공모전'에 위 사진들로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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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11.30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사진도 멋지고, 산도 멋있고, 전 이상하게 바다보다 산이 훨씬 좋더라구요,,,
    저두 가보고 싶어요!! 고생은 하겠지만,,,ㅎㅎㅎ

    • BlogIcon 주드 2008.12.01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바다도 좋고 산도 좋은데, 결국 올해는 바다를 한번도 못봤네요. 지리산에 가시게 되면 준비를 단단히 하시길 바랍니다. 날씨 체크도 확실히 하시고, 기본 장비들도 챙기시구요. 안그러면 정말 저처럼 생사를 건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됩니다.-_-;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12.01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도가 나무도 되어 있군요. 지리산 산행 무사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산행은 오기로 가면 안되는 거 같더라고요. 너무 위험해욧!~

    • BlogIcon 주드 2008.12.01 1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지막 사진에 나타난 인도는 산을 다 내려와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는 길 이에요. 험한 산길을 벗어나 평지를 걸으니 발이 저절로 움직이더군요.ㅎㅎ

  3. BlogIcon 배트맨 2008.12.02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무엇보다도 지리산 같은 곳에서만 보실 수 있으셨을 '무수히 쏟아지는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을 보신 것이 정말 부럽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로맨틱했을까요. 그런 장면은 이제 영화로 밖에 볼 수 없어서요. T.T (그런 밤하늘을 바라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였던가.. orz)

    • BlogIcon 주드 2008.12.03 1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배트맨님과 같은 기대를 가지고 갔으나, 막상 현실은 추위와 피곤으로 인해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했어요. 그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적이긴 했지만요. :)

  4. BlogIcon she-devil 2008.12.03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리산은 고등학교때 써클에서 여름에 놀러갔던 기억이 남아있어요
    초등학교에서 2박3일을 지냈는데 하늘에 쏟아져내릴듯한 별빛이 가끔 생각나요 +_+)/

    • BlogIcon 주드 2008.12.03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2박3일! 저는 이번에 다녀와서 좋으면 다음번엔 종주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워낙 고생을 많이 하는 바람에 당분간은 산 근처에도 안가려고 합니다.-_-; 말씀하신대로 밤 하늘은 정말 좋았지만요.

  5. BlogIcon 재밍 2008.12.04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참 운치가 있네요.
    산좀 열심히 다니며 살빼려 하는데, 동네 뒷산도 잘 안가서 힝..ㅠㅠ
    어렸을적부터 주말마다 관악산 끌려다니고,
    군대도 강원도 화천에서 지겹도록 산타며 보내서
    다시는 산에 가기도 싫었는데 그래도 끌리는 건 어쩔수가 없네요 ^^

    • BlogIcon 주드 2008.12.05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진으로 보면 참 좋은데,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면 아찔합니다. 저는 적어도 1,2년은 지나야지 다시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것 같아요. 이번에 너무 고생을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