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확실히 예전처럼 많은 영화를 보는 편이 아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장르의 영화를 보더라도 왠지 식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만 봐도 대충 어떤 결말이 나올지 예상이 가능했고, 그런 예상은 어김없이 맞아 떨어졌다. 또한 주요한 장면들이나 대사들 조차 언젠가 어떤 영화들에서 봐 왔던 것처럼 익숙하게만 느껴져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뭔가를 진득하게 오래 좋아하지 못하는 내 습성이 결국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생활이자 꿈이기도 한 '영화'에도 적용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보란 듯이 깨버린 영화가 '그랜 토리노'다. 이 영화가 무심한듯 나에게 던져 준 감동은 마치 내가 왜 이토록 영화를 좋아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대답과도 같았다.


'그랜 토리노'는 까칠하고 고집쎄며, 모든 것이 불만인 한 노인 '월트'의 이야기다. 영화는 도입부에 그의 아내 장례식 풍경을 보여주며 월트가 어떠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꼬장꼬장한 성격에 자식들이며 손자들은 그를 꺼려하며, 주변의 누구도 그와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온전하게 혼자가 되어버린 월트는 우연하게 옆집에 살고 있는 아시아계 '흐몽족' 가족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점점 마음을 열고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들 흐몽족 가족을 괴롭히는 또 다른 흐몽족 갱단들의 공격이 계속되고, 결국 갱단들이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자 월트는 갱단들을 처리할 복수를 계획한다.


나는 이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서도 역시 식상 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과 기름처럼 남들과 섞이지 못하는 캐릭터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동화되고 결국 함께 살아 간다는 이야기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런 평범한 전개는 결론의 감동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였다는 사실을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 노인이 왜 한 평생을 그렇게 불만으로 가득 찬 채 살았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가 왜 흐몽족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으며 결국 그들을 위해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을까 에 대한 답은 바로 지난 날들의 자신에 대한 '속죄' 이다. 지난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참전하게 된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던, 그리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야 했던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와 울분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난 날들에 대한 속죄이자 흐몽족을 괴롭히는 갱들에 대한 복수로 선택한 방법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영화 속 복수 장면들 보다 강렬하고 슬펐다.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이렇게 커다란 감동을 느끼며 마음 한 켠이 먹먹해 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그토록 영화를 좋아하고, 또 계속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영화 '그랜 토리노'를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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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쉬타카 2009.03.25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조차 쓰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던 영화였어요 ㅠ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3.26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엔 결말이 영화속으로만 이해되었을 때 좀 거부감이 든것도 사실인데 되씹어 볼 수록 감독 자신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감동적으로 와닿네요. 빨리 다시 보고 싶네요 ㅎ

    • BlogIcon 주드 2009.03.26 14: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거부감을 느끼셨군요. 하긴 그럴수도 있겠어요. 저는 워낙 아무런 기대도, 느낌도 없이 무감각한 상태에서 이 영화를 접하다 보니 오히려 더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3.30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인질링이 좋아서 그랜 토리노도 당연히 보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미뤄지네요. 다음주까지 극장에 걸려있음 좋겠어요. 생각해보니까 저도 영화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네요. 돈이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보지만... 제가 무뎌져서가 더 큰 이유인 거 같아요. 뭘 봐도 예전처럼 두근두근은 아니거든요. 게, 게을러져서기도 하고요. 에헤헵.

    • BlogIcon 주드 2009.04.02 2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영화는 꼭 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강추하는 영화에요!
      저는 돈 보다는 영화를 볼 만한 시간과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없는 시간도 쪼개서 영화를 봤지만 요즘엔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좀 밀린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 역시 게으른게 가장 큰 문제일지도;;

  4. BlogIcon 1004ant 2009.04.01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년산 포니도 도난당할까란 생각이 들만큼 그랜 토리노 이쁘더군요.. 얌얌보다..

    • BlogIcon 주드 2009.04.02 2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 보기 전에는 '그랜토리노'가 차 이름인줄 몰랐네요. 근데 그 자동차 정말 잘 빠졌더라구요. 아주 멋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