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를 아주 막막하고 힘빠지게 하는 영화를 만났다. 영화가 후져서 그런게 아니라, 반대로 너무 좋아서 말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이 욕으로 이루어진 대사들도, 너무나 불편했던 무자비한 폭력과 학대 장면들도, 희망이란 찾아볼수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그들의 상황들도, 예상은 했지만 제발 아니길 바랬던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나서도 답답하고 안쓰러운 마음과는 달리 마음 한켠에서는 좋은 영화를 만났을때 느껴지는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주인공 남자가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과 행동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상황들은 관객들에게 그를 이해시키려 한다기 보다는 그냥 툭 던저놓아 버린다. 그렇기에 굉장히 불친절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그가 오래된 폭력과 가부장적 권위의식의 피해자이며 그의 행동들이 그것에 대한 증오로부터 비롯됐다는걸 알게 된 이후에는 마치 복수의 대상을 잃어버린 검객마냥 굉장히 공허하고 허탈해졌다. 그에 더해 사건의 해소가 아닌 반복을 암시하는 이 영화의 결말에는 섬뜩한 느낌마져 들었다.

이 영화로 인해 그 동안 '배우' 라고만 생각했던 양익준은 이제 나에게 독특한 느낌의 배우이자, 실력있는 감독이자, 무엇보다 부러울만큼 멋진 시나리오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지는 정서나 몇몇 장면들은 왠지 감독의 경험에서 파생된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훌륭하다.

분명 영화 '똥파리'는 누군가에겐 굉장히 불편하게, 또 어느 누군가에겐 굉장히 아프게 다가올법한 영화이지만 그걸 감수해도 좋을 만큼 아주 멋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상처를 도려내는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야만 그걸 온전히 치료할 수 있을테니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널라와 2009.04.30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독의 경험에서 파생된 듯한 그런 장면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한거야? 아니면 불필요한거라고 생각한거야?

    • BlogIcon 주드 2009.05.01 0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필요, 불필요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보다보면 뭔가 경험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거든. 대부분 글을 쓰다보면 자신의 경험들이 은연중에 녹아들면서 자칫하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되어버리는데, 양익준 감독은 그걸 적당히 참 잘 풀어냈어. 근데 너 왜 전화 안받는거냐!

  2. BlogIcon 1004ant 2009.05.01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포장마차 단속하는 장면 이어지는 부분이 인상깊더군요. 한연희도 인상깊었고요.. 6^^

    • BlogIcon 주드 2009.05.04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연희는 누군가요? 영화속 캐릭터였던가..가물가물 하네요.
      마지막씬은 정말 좋았어요. 끝까지 강하게 한방 날리더라구요.

    • BlogIcon 1004ant 2009.05.04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녀가 포장마차에서 처음으로 통성명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여주인공 극중이름이 '한연희'였었죠.

    • BlogIcon 주드 2009.05.05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하. 기억납니다. 한연희, 두연희, 세연희...ㅋㅋㅋ
      제 머리 속에서는 캐릭터 이름보다 그냥 '여고생'으로 기억되어 있어서 말이죠.^^

  3. BlogIcon mepay 2009.05.01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블로그에서 이 영화 내용을 접하고,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봐야지 했는데.. 지방이라 그런지 상영관 찾기가 어렵더군요. 딱히 시간내서 볼 여유도 없고.. 나중에 dvd 나오면 그때 감상해봐야겠어요.

    • BlogIcon 주드 2009.05.04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울 살아서 좋은것 중 하나가 문화생활 다양하게 할 수 있는거죠.^^ 아마 이 영화는 여러가지로 잘 되서 디비디도 나올 것 같습니다. 저도 다시한번 보고 싶은 영화에요.

  4. BlogIcon 슈리 2009.07.02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고나서 왠지 비열한 거리가 생각나더라구요. 확실히 저예산영화(?)랄까, 이런 영화는 주제나 연기톤이 더 자유로울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 BlogIcon 주드 2009.07.04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비열한 거리' 보다는 이 영화가 훨씬 나은것 같아요. 폼 잡지 않고 처절한 모습 그대로를 잘 살린것 같아서요. 감독이나 배우, 이야기들은 비주류에 속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는 어떤 상업영화들과 비교해도 뛰어났던것 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