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를 읽고 내가 상상하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 영화를 보면서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이 당황스러움의 정체는 '놀라움'의 다른 표현이다. 역시 이번에도 봉준호 감독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있음]
이미 많은 분들이 눈치 채고 있겠지만 이 영화가 단지 어머니와 아들의 모성애를 다룬 평범한 영화는 아니다. 시작부터 아슬아슬하고 굉장히 극단적이다. 길 건너 아들의 모습에 집중한 채 불안하게 날카로운 작두로 약재를 자르는 어머니의 모습이나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도로에 무조건 뛰어드는 아들 도준의 모습에서 난 왠지 모를 초조함과 함께 이 모자를 관통하는 불안정한 정서가 어디서부터 파생되는건지 궁금해졌다.
초반부에 다소 지루하게 진행되던 스토리가 단번에 전환되면서 흥미로워지는 시점이 바로 이 부분이 밝혀지는 순간 이었다. 감옥에 갖힌 도준이 갑자기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며 어머니에게 5살 때의 기억을 이야기 하는 장면. 이 장면으로 인해 결국 이 영화는 나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힌 아들을 빼내기 위한 어머니의 사투'가 아니라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어머니가 평생 그에게 속죄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반전이 되면서 극단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처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영화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머니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행동들 마져 결국엔 불필요한 진실을 밝히게 되는 과정으로 치부해 버리며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짐을 하나 더 지우게 한다. 그 모든 일들을 단지 그녀가 '어머니' 이기 때문에 버티고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굉장히 인상깊었던 오프닝씬과 엔딩씬의 장면들이 영화를 다 본 후 너무나 슬프게 느껴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완벽한 캐스팅도 이 영화가 놀라운 또 하나의 이유다. '어머니' 역할의 김혜자씨의 연기는 내가 그동안 티비를 통해 봐 왔던 그녀의 연기를 모두 잊게 할 정도로 강렬하고 인상깊었다. 표정이며 행동은 물론이고 목소리 톤 하나까지 놀라웠달까. 봉준호 감독이 '마더' 촬영이 끝난 후, 김혜자씨에게 자신의 다음 다음 작품('설국열차' 이후 작품)의 시놉시스를 건넸다고 하는데, 정말 감독이라면 이런 배우 욕심날 것 같다. 생각보다 '아들' 역할의 원빈도 좋았다. 그 얼굴에 '동네 바보' 역할이 어울릴까 싶었는데 꽤 잘하더라.
개인적으로는 '박쥐' 보다는 '마더'가 훨씬 좋게 느껴졌는데, 이번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왜 수상하지 못했나를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마더'의 정서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아들의 대한 맹목적인 모성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짊어져야 하는 '한(恨)'의 무게를 이해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물론 나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덧. 이 영화에서 좀 이해가 안되는것이 도준이의 친구 진태가 어머니를 협박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단순히 동네 깡패가 건수 하나 잡아서 협박하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영화 속 에선 나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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