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하하' 관람기

보고듣고/영화/드라마 2010. 5. 18. 23:15 Posted by 주드


늦잠을 자야 마땅할 일요일 오전, 친구 결혼식에 가야했던 나는 이왕 멀리까지 나가는김에 나름 보람찬 하루를 보내자는 생각으로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하하하'를 선택했다. 나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유독 '하하하'는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당장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든 영화이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그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봤던 '생활의 발견'과 두 배우가 겹쳐서일거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마도 난 이제 홍상수 감독 영화를 낄낄 웃으며 즐길만한 나이가 된 거였다. 그저 불쾌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불편할 정도로 꾸밈없는(?)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을 이젠 나도 느긋이 웃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을 공유하자 권하기가 어색해 난 그냥 혼자 극장엘 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씨네큐브 상영관에는 왠일로 사람들이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일부러 편하게 보려고 그나마 사람이 없는 구석 자리를 택했는데, 나와는 다른 이유로 구석 자리를 택한 연인들 옆에 앉는 바람에 좀 난감했다. 영화가 너무 웃겨서 내가 박장대소 할 때마다 옆에 연인들이 깜짝깜짝 놀라서 말이다. 어차피 그들이 영화를 보러 온 것은 아니었던듯.


'하하하'를 보며 내가 눈물나도록 웃은 이유는 두 남자의 허세 때문이다. 나름 고뇌하는 지성인인듯 말은 참 그럴싸 한데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찌질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두 남자의 모습은 최고의 개그였다. 특히 이번 '하하하'에서는 두 남자가 술을 마시며 마치 한수 한수 바둑을 두듯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본인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본능적인 행동들은 말 그대로 너무나 웃겼다. 정말 제목 그대로 '하하하' 여러번 웃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과연 내가 영화 속 그들을 보며 순수하게 웃을만한 자격이 있나 싶었다.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나의 경험들, 그리고 나의 고민들이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사소하면서도 유치하고 우습게 비춰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영화 속 그들을 생각하면 역시나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막걸리가 마시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