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2010) - ★★

보고듣고/영화/드라마 2010. 5. 22. 13:00 Posted by 주드

그동안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한번도 유쾌했던적 없던 내가 궂이 이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달려가 본 이유는 순전히 배우들과 원작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이 작품을 보고 영화를 괜히 '감독의 예술' 이라고 부르는것이 아니란 사실만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기대했던 전도연, 윤여정, 서우 등은 배우 각자로서는 매력적이었지만 영화 속에선 전혀 어우러지지 못한 채 겉돌며 그저 소모되고 있었고, 원작 '하녀'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플롯은 온데간데없이 흩어져 뜬금없이 피아노 치는 주인남자 정도에서만 원작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문득 든 의문. 과연 '리메이크'라는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내 기준으로 봤을때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 리메이크작이 아닌 그냥 독립적인 임상수 감독의 영화인데 말이다. 이 '리메이크' 라는 단어만 쓰이지 않았데도 내가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궂이 기대하고 찾아보며 결국 실망하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물론 그의 의도가 어느정도 짐작이 되긴 한다. 직업을 알 순 없지만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주인집 남자와, 그가 하녀와 바람을 핀 걸 알면서도 모든걸 가진 그를 놓칠 수 없어 그 상황을 견뎌내는 부인과, 주인집 남자와의 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그래서 갖게 된 그의 아이를 단순하게 낳아 키우고 싶어하는 멍청한건지 순진한건지 알 수 없는 하녀와, 그녀 본인보다 그녀의 마음을 더 꽤뚫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또 때로는 관찰자 입장에서 있는 늙은 하녀의 모습. 이런 캐릭터들 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집이며 그 집을 치장하고 있는 각종 소품들과 그림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며 대사 하나하나가 한가지를 말하고 있다. 소위 상위계층의 위선과 허울.

그걸 알면서도 이 영화가 내내 불편했던건 위의 사항들을 바라보고 까발리려는 감독의 시선 자체도 상위계층의 그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이 영화를 보다보니 다소 뜬금없는 클라이막스와 결말 부분은 오히려 감독이 조롱하고자 하는 대상이 어느쪽인것인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역시나 난 앞으로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피하는게 좋을 듯 싶다.


덧. 도중 하차한 김수현 작가님의 '하녀' 리메이크 시나리오도 읽어보고 싶다. 언젠가 전문을 공개하겠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은데 그 이후 소식은 못 들은듯. 나에겐 임상수 감독의 하녀 보다는 김수현 작가의 하녀가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