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꼭 보고싶던 작품이었는데,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예매폭주 및 서버다운에 영화제 자체를 포기하면서 극장 개봉만을 기다렸던 작품이다.

난 하드고어 매니아(?)인 회사 사람들에게 일찌감치 이 영화의 예고편을 돌리며 관심을 집중시켰고, 결국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이틀 전 까지 서울 내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리스트가 제대로 업데이트되지 않아 회사와는 한참 동떨어진 종로의 어느 극장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봤다.(정말이지 극장이 많으면 뭐하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는데. 독과점 & 상업주의 멀티플랙스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는게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거란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영화를 본 뒤 더욱 큰 묵직함으로 내 마음을 울렸다. 그건 함께 영화를 본 동료들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우리는 지하철이 끊기고 새벽이 밝아 택시 할증이 풀릴 시간까지 술을 마시게 되었을 정도다. 이렇게 새벽까지 함께 본 영화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니 마치 20대 초반 어느순간으로 돌아간듯한 착각도 들었다. 물론 몸과 마음은 그때로부터 많이 멀어졌지만.

영화는 거칠고 거침없다. 목적이나 의도 역시 분명하여 머리아프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저 본능에 충실한 영화다. 신인감독 작품 답게 전반적으로 매끄럽지는 않지만, 소재와 주제의 힘으로 원래 의도된 연출인듯 우직하고 거칠게 밀어붙이니 그게 또 꽤나 잘 어울린다.

고어 장면은 나에겐 최근에 봤던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피라냐 등과 비교했을때 가장 잔인했지만 가장 볼만했다. '볼만했다' 라는 건 그런 장면들의 연출과 재현이 뛰어났다는 의미가 아닌, 가장 개연성 혹은 목적성이 확실한 고어장면이었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을 보며 안타까움이나 연민보다는 일종의 쾌감(?)이 더 컸다는 이야기다. 이 고어씬으로 인해 국내 영화에선 보기 드물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응징할 수 있는 여자 캐릭터가 탄생했을 뿐 아니라, 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인 장철수 감독은 오히려 그와 확실히 구별될 수 있었다 생각한다. 역시나 초반의 장면들은 김기덕 감독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나, 그걸 후반부에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좀 더 폭발적이고 명확하다.

'김복남'을 너무나 충실히 연기해낸 배우 '서영희'도 대단했다. '추격자'에 이어 또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보게되어 조금 안쓰러웠으나, 그녀의 조금은 어눌한 말투와 쳐진 눈매는 평생 동안 참고 참으며 살아오다 한 순간 무섭게 폭발하는 김복남의 처연한 모습을 표현하는데 너무나 적절했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올해 여우주연상은 김복남의 서영희와 하하하의 문소리로 압축되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는 서영희에 한 표.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내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한 영화는 참 오랜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그녀들이 마냥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영상이 흐르는 동안, 난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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