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가 정말 '영화' 로 만들어져 극장에서 상영될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반응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이 영화 개봉후에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들을 아무런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불편한 영화를 돈까지 줘가며 볼 관객들이 얼마나 되겠냐는 말이다.


내가 처음 이 영화 시나리오를 읽어본게 아마 작년 이었을거다.
원신연 감독은 본인이 쓴 '구타유발자들' 시나리오로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공모전 사상 최초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당선됐다.
어차피 나는 영화를 객관적으로 판단 하는것이 불가능 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공모전심사'란 것도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주관적이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구타유발자들'의 시나리오는 완벽해 보였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듯이 눈으로 읽고있는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거다. 상황에 대한 수려한 묘사들과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결,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폭력의 연쇄성' 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가 어우러져 영화 시나리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최고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동시에 든 생각이 작품성에서는 최고일지 몰라도 상품성면에서는 최악이라는것이다. 한마디로 '대중성' 이 철저하게 결여된 작품이다.

아마 이 부분은 영화를 쓰는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작가로서 잘 쓰고 싶은 욕심과 영화로서의 대중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거.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렇게 잘 쓴 시나리오의 경우는 대부분 작가들이 연출까지 욕심을 내게 마련이다. 하지만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신인에게 이런 무거운 작품을 맡기는 것 자체가 모험일 것이고... 원신연 감독이 결국 작년에 '가발' 이라는 공포영화로 장편데뷔를 한 후, 두번째 작품으로 올해 '구타유발자들'을 연출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구타유발자들'은 한석규, 이문식등의 나름 화려한 캐스팅으로 대중성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듯 보이나 아무리 유명한 배우들을 쓴다고 해도 영화 자체에 녹아있는  무겁고 처절한 주제를 커버하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감독이 재치를 발휘해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 조금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원신연 감독이 신인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본인이 쓴 시나리오를 영화화 하다보니 그런건지...영화는 시나리오와 한치의 다름도 없이 그대로 쭉 흘러가는것이 좀 안타깝다.


'구타유발자들' 시나리오를 읽고 거의 모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텐데도, 뚝심있게 영화를 만들어낸 원신연 감독과 제작사가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어선 이런 좋은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진 걸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