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를 아주 막막하고 힘빠지게 하는 영화를 만났다. 영화가 후져서 그런게 아니라, 반대로 너무 좋아서 말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이 욕으로 이루어진 대사들도, 너무나 불편했던 무자비한 폭력과 학대 장면들도, 희망이란 찾아볼수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그들의 상황들도, 예상은 했지만 제발 아니길 바랬던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나서도 답답하고 안쓰러운 마음과는 달리 마음 한켠에서는 좋은 영화를 만났을때 느껴지는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주인공 남자가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과 행동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상황들은 관객들에게 그를 이해시키려 한다기 보다는 그냥 툭 던저놓아 버린다. 그렇기에 굉장히 불친절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그가 오래된 폭력과 가부장적 권위의식의 피해자이며 그의 행동들이 그것에 대한 증오로부터 비롯됐다는걸 알게 된 이후에는 마치 복수의 대상을 잃어버린 검객마냥 굉장히 공허하고 허탈해졌다. 그에 더해 사건의 해소가 아닌 반복을 암시하는 이 영화의 결말에는 섬뜩한 느낌마져 들었다.
이 영화로 인해 그 동안 '배우' 라고만 생각했던 양익준은 이제 나에게 독특한 느낌의 배우이자, 실력있는 감독이자, 무엇보다 부러울만큼 멋진 시나리오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지는 정서나 몇몇 장면들은 왠지 감독의 경험에서 파생된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훌륭하다.
분명 영화 '똥파리'는 누군가에겐 굉장히 불편하게, 또 어느 누군가에겐 굉장히 아프게 다가올법한 영화이지만 그걸 감수해도 좋을 만큼 아주 멋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상처를 도려내는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야만 그걸 온전히 치료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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